해마다 12월이 되면, 거리의 불빛은 조금 더 따뜻해지고 크리스마스의 공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발레가 있다. 바로 호두까기 인형(Nutcracker)이다. 반복되지만 늘 새로운 감정을 품고 돌아오는 이 작품은 매년 겨울의 문을 여는 의식처럼 우리 곁을 찾아온다. 어제 한국문화원에서 국립발레단의 The Nutcracker 영상 상영을 보며, 나는 익숙한 고전이 어떻게 매번 새로운 얼굴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무대 공연에서는 객석이라는 한 방향의 시선만 허락되지만, 영상 속에서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또 다른 감각의 문을 연다. 무용수의 눈빛, 음악이 닿는 손끝의 떨림, 몸의 긴장과 이완이 더 가까이 보이며 작품의 결이 섬세하게 드러났다. 수십 년 동안 이 작품을 겨울마다 보아 왔음에도 매번 새로운 감정이 스며드는 이유는, 예술이 반복 속에서도 늘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만난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내가 오랫동안 익숙하게 알고 있던 여러 버전들과는 다른 호흡을 품고 있었다. 꽃의 왈츠(Waltz of the Flowers)를 이끄는 이슬방울 요정(Dewdrop)이 등장하지 않았고,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진저 맘(Ginger Mother) 장면도 보이지 않았다. 또 양치기들의 춤(Shepherds Dance)에서는 양떼 대신 프랑스풍 의상과 작은 인형 강아지가 등장하며, 고전 속에서도 또 다른 상상력이 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익숙한 장면이 빠진 자리에는 오히려 새로운 해석과 상상력이 들어와 앉는 듯했다.

상영 전, 무용수 Christine이 들려준 부드러운 해설도 영상 감상에 깊이를 더했다. 한국 2세 무용수로서, 그리고 실제 무대를 살아내는 예술가로서 그녀가 건네는 설명은 작품의 결을 이해하도록 이끄는 또 하나의 층위였고, 영상이 시작되기 전 마음속에 조용히 프롤로그가 열리는 느낌을 주었다.

이번 행사의 호두까기 인형 의상을 입고 함께한 이들은 바로 우리 한미무용연합 진발레스쿨의 실버발레단원들이었다. 특히 꽃의 왈츠 음악이 흐르던 순간, 한 실버 발레 단원이 공연을 마친 뒤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선생님, 음악이 시작되는데… 예전에 무대에서 춤추던 느낌이 다시 몸으로 올라왔어요. 거기서 그대로 또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말 속에는 한 사람이 예술과 함께 나이 들며 쌓아온 시간, 무대 위의 기억, 몸이 기억하는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잠시의 이벤트였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다시 피어오른 삶의 감동이었다. 그 순간, 이 겨울의 작은 무대가 그 어느 해보다 따뜻하게 빛났다.

한국문화원이 준비한 따뜻한 선물들은 이 겨울의 고전에 또 다른 빛을 더했다. 올 한 해 한국문화원이 선보인 다양한 공연예술 시리즈를 떠올리면, 이 LA라는 도시에서도 한국 예술의 숨결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다가온다.

문화란 우리가 어디에 있든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게 해주는 조용한 등불이다. 그 등불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손길이 어제의 상영회 곳곳에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어제 만난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은 내가 수십 년 동안 반복해온 바로 그 작품이면서도, 다시 완전히 새로운 얼굴로 다가온 겨울의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한국문화원의 정성과 노력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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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발레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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