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흐르는 것들 – 엔도 슈사쿠 ‘ 깊은 강” 과  “ 침묵” 을 읽고

What Flows in Silence – Reading Endō Shūsakus Deep River and Silence

5월 낭만독서 모임의 책은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 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15년 전 먼 빛 너머로 떠나간 언니를 떠올렸다. 대장암이라는 고통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말없이 삶을 마감했던 큰 언니. 대장암이라는 고통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말없이 삶을 마감했던 언니. 하지만 이상하게도, 언니는 ‘떠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히 남아 있는 존재’였다. 보이지 않아도 함께 숨 쉬고, 말은 없지만 기억 속에서 자주 말을 걸어오는 사람. 어쩌면 그 조용한 존재감 덕분에, 우리는 남은 세 자매가 언니의 빈자리를 감싸며 묵묵히 살아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어느 봄날, 우리는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 전날 둘째 언니가 꿈을 꿨다. “나 인도에 있어.” 꿈속에서 그렇게 말한 큰언니의 목소리는, 죽은 자의 음성이기보다는 어딘 가에서 아직 살아 있는 기억의 메아리 같았다. 우리는 마음 한편으론 ‘정말일지도 몰라’ 하고 조용히 기대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그럴 리 없지, 그냥 환생은 미신일 거야’ 하며 스스로를 달래듯 웃었다. 믿음과 의심 사이, 현실과 바람 사이에서 마음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여행 중 계속 다섯 살 된 아이들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거리엔 1달러를 구걸하는 지저분한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문득 마음속에 두려운 생각이 스쳤다. 혹시 언니가 이런 모습으로 환생해 있었다면 어쩌지? 그 생각에 우리는 다가오는 아이들을 외면했다.

그러다 우리는 한 아이를 만났다. 유명 관광지에서 조용히 우리 곁에 서 있었던, 언니의 어릴 적 모습을 꼭 닮은 아이. 그 아이는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이상할 만큼 단정했고 어딘가 빛나 보였다. 말없이 맑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그 아이는 마치 처음부터 우리 일행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 순간 우리는 속으로 말했다. “그래, 이 아이가 언니일지도 몰라.” 믿음은 아니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위안과 평온함이 마음을 감쌌다.
아이의 부모는 친절했고,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고 따뜻한 대화를 나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순간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깊은 강”을 다시 읽으며, 그 감정이 조용히 내 안에서 겹겹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소설은 각기 다른 상처를 안고 인도로 향한 네 명의 일본인 (아내를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진 남편, 전쟁에서 학살을 저지른 죄책감에 시달리는 전직 군인, 잊지 못할 연인을 찾아 떠나는 여자, 그리고 신념의 길에서 방황하는 신부) 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들은 바라나시에서 생과 사, 속죄와 구원, 믿음과 허무 사이에 선 인간 존재의 본질을 마주하게 된다.

작품 속 구관조 이야기를 읽는 순간, 문득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에 등장하는 ‘새’가 떠올랐다. 이어 머릿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던 법정스님의 인도기행도 불현듯 떠올라, 나는 다시금 책장을 더듬듯 펼쳐보았다. 한 책이 다른 책을 불러내고, 한 장면이 다른 기억을 깨우는 그 순간, 그것은 나만의 독서가 완성되는 방식이며, 문장과 사유가 내 안에서 조용히 연결되는 기쁨이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때의 인도 여행이 그저 화려한 표면만을 스쳐 지나간 여정이었다. 타지마할 앞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고, 낯선 풍경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면서도 우리는 인도의 진짜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가장 오래된 도시, 죽음과 삶이 함께 흐르는 곳 바라나시에는 가지 않았다. 단체 관광 코스에는 그곳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가난하고, 너무 지저분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깊은 강” 을 읽고 나서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더럽다고 외면했던 바로 그곳에,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진실이 깃들어 있었던 건 아닐까? 죽음을 일상처럼 받아들이며 강가에 앉아 침묵하는 이들의 모습이, 이 책 안에서 너무도 낯설고도 숭고하게 다가왔다. 그곳은 피하고 싶은 곳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에서야 겨우 도달하게 되는 장소, 말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존재의 본질을 받아들이는 공간이었다. 나는 언젠가 꼭 바라나시에 가보고 싶다. 겉모습을 넘어서, 그 안을 보기 위해서. 죽음을 두려움으로 가두지 않고, 삶의 일부로 마주하는 그 땅에서 언니가 속삭였던 “나 인도에 있어”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갠지스강에 발을 담글 용기가, 내게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 여운을 안고, 나는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작품 “ 침묵” 을 펼쳤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고,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다. 17세기 일본,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신자들, 그리고 그들을 구하려다 결국 배교하게 되는 포르투갈 선교사 로드리고. 그는 신에게 묻는다. 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습니까, 왜 침묵하십니까? “침묵” 은 단순한 종교 소설이 아니었다. 고문당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지켜야 할 신앙과 누군가의 생명 사이에서 갈등하는 로드리고의 모습은 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책임, 선택의 깊이로 다가왔다. 그는 결국 예수의 형상을 밟는다. 배신의 행위이자 동시에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결단.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처음으로 신의 음성을 듣는다. 나는 네가 그것을 밟는 것을 허락했다. 나는 네 곁에 있었다.

그 장면을 읽으며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떠올렸다. 그는 말했다. 비극은 연민과 공포를 일으켜, 그 감정을 정화하는 카타르시스를 낳는다. “침묵” 은 바로 그런 비극이었다. 나는 로드리고의 흔들림에 연민했고, 그의 선택 앞에서 나 자신을 대입하며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긴 여정을 따라가며 나는 말없이, 그러나 깊이 감정의 정화를 경험했다. 나는 이 책을 덮고, 말할 수 없는 울림 속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엔도 슈사쿠. 나는 그를 내 인생 최고의 작가로 마음속에 새기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이 책을 썼고, 죽을 때 자신의 관 속에 함께 묻어 달라고 유언할 만큼 영혼을 다 담아냈다. 그 마음이, 그 침묵이, 읽는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내 마음을 깊게 흔들었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어쩌면 그것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계를 대신 건너보기 위함이다. 타인의 고통을 따라가며 안도하고, 그들의 슬픔에 스며들며 연민하고, 그 끝에서 내 안에 고요히 일렁이는 감정을 카타르시스라는 이름으로 씻어내는 일. 그러면서 나는 또 한 걸음, 나 자신에게 가까워진다. 책을 읽는 일은 내게 성찰이다. 그리고 그 성찰은 무대 위에서 이어진다. 무용이란 말없이 흐르는 이야기다. 몸이 언어가 되고, 침묵이 고백이 되고, 눈물이 흘러야 할 자리에 손끝이 떨리는 것. 그것이 내가 춤을 계속 추는 이유다.

나는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침묵을 마주한다. 잃은 사람의 부재, 이해 받지 못한 감정, 끝내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고통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몸이 그것을 말하고, 그 말없는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순간, 나는 다시 삶을 배운다. 깊은 강과 침묵이 그랬다. 그 침묵은 나를 가만히 안아주었고, 그 속에서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춤을 춘다. 말은 없지만 마음은 흐른다. 오늘도 예술이라는 언어로 움직임 하나, 숨결 하나에 마음을 실어, 나는 또 하나의 침묵을 무대 위에 띄운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사유와 감동의 여정을 낭만독서 모임이라는 따뜻한 공동체 안에서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 곳에서의 책 읽기와 토론은 단순한 지적 활동을 넘어, 나를 더 넓고 깊은 존재로 확장시키는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삶의 훈련이 된다. 그렇게 나는 함께 읽고 말하는 이 자리에서, 조금씩 더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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